가고시마성당

1549년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스페인 신부가 가고시마에 도착했다. 하비에르 신부는 리스본 항을 떠나 아프리카 희망봉 항을 지났고 인도의 고아를 거쳐 마카오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바람이 좋아지기를 기다려 일본 규수 남단 가고시마 땅에 내렸다. 선교사의 도착은 다른 한편 일본 개화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신부는 일본으로 선교를 떠나기 전 포르투갈 상인들에게 정보를 수집했다. 그것을 근거로 그는 “모든 사람이 일본에 가서 일본인들에게 선교를 하면, 지금 이곳 인도의 이교도들보다 훨씬 큰 성과를 낼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사람들은 무척이나 이성적이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는 희망적인 편지를 보냈다.

마르코폴로가 동방견문록에서 “황금의 나라 지팡구”라고 표현해서 유럽인들의 호기심과 욕망을 자극했던 일본에 대해서 하비에르 신부는 그동안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 겪은 수많은 고생과 노력이 제대로 보상받고 신의 복음을 제대로 그리고 이성적으로 전달 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었을 것이다. 그리고 도착 후 첫인상을 기록했고 유럽에 알렸다.

“이곳 사람들은 서로 서로가 예절을 많이 표시하며, 일상적으로 무기를 소중히 여기고 무기에 크게 의존한다. 14세가 되면 벌써 칼과 단도를 지니고 다닌다. 일본 사람들은 음식을 적게 먹으나 술은 많이 한다. 이들은 쌀로 빚은 술을 마시는데 왜냐하면 이곳에는 포도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결코 도박을 하지 않는데 이것은 도박을 큰 불명예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후 수백년동안 수많은 선교사들이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본 막부시대를 겪었다. 막부시대의 선교사들이 유럽에 전한 소식은 기독교에 대한 탄압으로 이어졌고, 결국 1649년 선교사들은 수많은 순교자를 남기고 일본 땅에서 철수하고 만다.

그러나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유럽 선교사들이 가져온 인쇄 활자, 대포, 총, 화약 등 서양의 문물은 일본을 크게 성장 발전 시켰다. 하비에르 신부와 선교사들은 기독교 전파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일본의 개화는 성공하게 했다. 특히 기독교를 반대한 도쿠가와였지만 네덜란드 상인들에게 나가사키 항구를 개방하여 독점 무역을 허용하는 실리주의 정책은 오늘날 선진 일본을 형성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으니 그들의 유연성이 부러울 뿐이다.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는 가고시마에 도착한 후 1550년 히라도(平戸)로 떠나기 전까지 약 10개월간 체류하면서 가고시마에 복음을 전파했다. 가고시마 시내의 중심가인 텐몬도오리에 있는 성당은 하비에르 신부의 일본 도착 450주년을 기념하여 바티칸의 기부로 세워졌다.

하비에르 성당의 재질은 모던하면서도 단순한 콘크리트로써 외관구조는 하비에르가 항해를 떠났을 때 몸을 실었던 범선을 이미지로 하고 있다. 교회 정면에 우뚝 선 종탑은 당시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긴 항해를 하고 선교를 했던 태평양 바다를 향해 있는 배의 돛을 상징한다. [출처] 가고시마 성지순례길

길 건너 성당 앞의 하비에르 공원에는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의 기념비와 흉상이 있다.

어둑해질 때까지 작은 기념 공원과 기품있는 성당내부를 관람했다. 일행들은 카톨릭 신자라 이 큰 성당에 신자수가 턱없이 작다고 안타까워했다.

나는 바티칸의 선물인 웅장한 건축물보다는 신부님의 강론에 눈을 맞출 수 있을만큼 작은 기도실이 따뜻한 느낌이었다. 그곳에서 말씀을 들으면 나도 감화될 수 있을까?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저녁을 먹어야 내일도 차질이 없겠다는 생각에 인터넷을 뒤졌다.

넓고 비옥한 땅에 기후까지 온화한 가고시마는 농업과 축산업이 발달했다. 싸스마이모라는 큼지막한 고구마와 구로부타라는 흑돼지 그리고 흑초는 가고시마가 특산물로 자랑하는 것이다. 특히 가고시마의 흑돼지는 일본에서 가장 맛있는 돼지고기이며 고구마를 먹고 자란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지방이 맛있고 양질의 콜라겐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오늘 하루도 나를 운반하느라 수고한 앙상한 무릎에 맞춤한 음식이겠구나 싶으니 입안에 군침이 돈다.

덴몬칸에 있는 돈가스 전문점을 찾았다. 구로카쓰테이라는 맛 집으로 성당에서 현지인한테 소개받았다. 두툼한 살집위로 입혀진 튀김옷은 보기에 알맞게 튀겨졌다. 야들야들한 속살은 흰 쌀밥과 함께 씹으니 육즙이 질리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베어 나온다. 엄지를 치켜세웠다. 마지막의 미소시루 한모금은 입가심은 되었을지라도 잘 삭힌 김치 한 조각이 떠올라 마른 침을 삼키고, 생맥주 한잔에 수다를 보태다 식당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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