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열도의 남단에 위치한 가고시마 공항에 내렸다. 해외여행이라고 나섰는데 초라한 작은 시골이었다. 더운 여름에 정보도 없이 일본 남단으로 날라 오다니…일본어도 제대로 못하는데 호텔까지는 갈 수 있을까? 두어 달 배운 일본어는 입속에서만 맴돌고 거리의 간판은 아직 글자도 익히지 못한 가타가나가 대부분이다, 겁도 없이 영어도 안 통한다는 작은 도시를 첫 여행지로 선택했구나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안일한 태도에 걱정이 얹힌 것은 잠시. 당장의 실질적인 문제가 다른 것을 덮어버리자, 버스 타는 곳으로 짐을 끌었다. 버스표를 뽑아들고 가고시마 중앙역에 내렸다.
중앙역 옥상을 뱅뱅 도는 관람차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공항은 아담하고 한적했지만 역 주변은 예상보다 화려했다. 일정에 포함된 이부스키행 다바데바코 열차표를 예매하고 역 중앙에 내려오니 빛바랜 동상이 먼저 들어온다. 군상이다. 19세기 중엽 일본 근대사에서 역사의 주 무대로 등장했던 사쓰마번(현재의 가고시마)의 영주가 영국으로 파견했던 젊은이의 기개를 보여주는 <젊은 사쓰마의 군상>이라는 작품이다.
1863년 영국과 벌인 사쓰에이 전쟁에서 패한 사쓰마번은 근대화의 필요성을 체감했고, 막부의 쇄국 정책과는 다르게 독자적인 서구 개방정책을 표방한다. 근대식 군대를 양성했고 똑똑하고 젊은 인재를 뽑아 영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격동의 시대에 새로운 근대국가를 꿈꾸던 젊은 피들의 희망과 열정은 강인하고 도전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싸스마번은 서양세력이 일본으로 들어오는 초입이다. 선교사 하비에르가 기독교를 처음 전래하다가 순교한 곳이기도 하고, 포르투칼 상인들이 왕래하기도 했던 일찍 개화된 곳이다. 일본의 근대사에서 뛰어난 인물을 많이 배출한 가고시마에는 이곳 출신들이 보여주었던 장쾌한 활약상과 과거의 영광을 기리고자하는 기념물들이 많이 있다. 곳곳에 역사적 인물들의 동상이 서있고 유신의 고향임을 자랑하여 유신의 고향 거리도 조성되어있다. 일본인들에게는 자랑일지언정 우리는 기억하고 싶지 않는 근대화의 주역들. 그러나 그들을 아는 것이 그들을 이기고 과거의 아픔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는 생각을 하면서 거리의 인물들을 지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