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 로드

하루에 3시간. 물이 빠지면 길이 나타난다. 연인과 함께 그 길을 걸으면 연이 이루어지고 계속된다는 속설때문인지 젊은 연인들이 많았다. 모두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기다리고 있느니 건너자는 눈길을 교환한 우리는 신발을 벗고 자박자박 길을 건넜다. 수많은 연인들의 바람을 담은 열쇠들과 일본인들의 오미구지가 걸린 황토구릉 앞에는 작은 불상이 있었다. 연인이 아닌 동료이자 친구이며 사제간인 우리는 사진만 몇 장 찍고 돌아 나왔다. 규모도 작고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말과는 다르게 신비한 곳도 아닌데, 낯 선 땅에서 좋은 곳에만 마음을 빼앗기는 나는 여행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연인의 언덕에 오르니 엔젤로드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연인의 손을 잡고 바다를 가로 지르는 순간은 어느 누가 생활을 소환하려하겠는가? 가을 하늘을 날고 있는 무심한 까마귀조차 의미를 부여하게 만든 곳이었다. 코쿠사이호텔 앞 투숙객을 위한 연인의 종도 울려보고 사람을 기다리는 표정으로 음울하게 놓여 진 의자에도 온기를 전해주면서, 우리는 시구가 되기 쉬운 여행지의 가을을 즐겼다.

버스시간이 많이 남아 항구까지 골목길 구경을 하며 걷기로 했다. 일본도 다르지 않았다. 어린아이들의 함성은 없고, 여기저기 버려 진 빈집에는 쏟아지는 햇살이 궁색함을 까발리고 있었다. 빈집을 덮은 담쟁이덩굴의 선명한 가을 색은 생명있는 것이 가지고 있는 난폭함이 사라졌다. 바라보는 내가 맥이 풀린다. 벗어나야 피가 돌 것 같아 걸음을 빨리했다. 빈 집에 앉아 빤히 우리를 올려다보고 있는 고양이조차 마음을 심란하게 만든다.

숨을 죽이고 있는 골목들을 빠르게 벗어나 항구에 도착했다. 부산하게 오고가는 사람사이로 스며들자 주위 경관들이 눈에 들어온다. 태양의 선물이라는 올리브잎 모양으로 만든 왕관 사이로 보인 하늘과 바다는 골목을 도망치듯 빠져나올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바다의 향기를 전해주었다,

‘세토우치 국제 예술제를 통해 섬과 예술의 융합을 통한 지역 활성화와 바다의 회복을 꿈꾸는 프로젝트가 있다. 세토우치 국제 예술제가 펼쳐지는 세토나이카이의 나오시마, 쇼도시마, 데시마, 오기지마 등의 12개 섬을 연결하는 페리를 타고 섬과 바다를 이어주는 예술제다. 그 때마다 관광객은 넘치지만 가을의 쇼도시마 구석구석은 활기가 없고 프로젝트만으로 섬을 살리기엔 면적이 넓고 사람이 적다는 느낌이었다. 태양의 선물을 이루는 하나하나의 올리브 잎새에 새겨진 쇼도시마 100명의 초등학생들이 메세지가 1000명의 초등학생들의 함성으로 터져나오는 날이 될 수 있도록 다각인 투자와 지원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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