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야마성

역 동쪽 출구로 나오자 분수가 있고 청년의 동상이 있다. 균형잡힌 이목구비를 갖춘 상당한 미남이다. 새로운 세상에 기대를 품고 있는 일본의 보통 청년을 기념하는 동상이다. 역 주변은 행인에게 탐욕스런 호기심을 드러내며, 큰 입들을 쫙 벌린 체 문을 열고 있는 상점들이 여느 대도시 못지않게 화려하다. 소음 때문에 낯선 여행지에 대한 흥분과 피로가 뒤섞인다.

오카야마 에키마에역에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대중교통인 오카텐에 올랐다. 100년 넘게 운행되어왔다는 1량짜리 노면전차는 오카야마성, 고라쿠엔 등 오카야마의 주요 관광지를 갈 때 편리한 대중교통이다. 빛바랜 옛 모양 그대로의 전차도 있지만, 다양한 캐릭터로 래핑 된 아기자기한 전차들도 있다.

오카야마성은 오카야마를 대표하는 관광지다. 노면 전차에 올라 시내구경을 하느라 두리번거리는 사이에 오카야마성에 도착했다. 새까만 외관의 옻칠 판자로 인해 까마귀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는데 외벽의 검은 색과 금색으로 칠해진 들보, 흰색의 창틀이 일본의 다른 성들보다 세련된 느낌을 준다. 약속된 해설을 하기 전에 10분정도 시간이 난다는 해설사의 안내를 받았다. 설명이 없었더라면 모르고 지나쳤을 수로를 살핀 후, 한쪽 모서리에 서있는 누각으로 걸음을 옮겼다. 1620년경 달맞이의 풍류를 즐기기 위해 지어졌다는 츠키미야구라다. 개방감이 없어 달을 어디서 어떻게 본다는 지 쉬이 납득이 안 되었다. 가사문학으로 꽃을 피운 우리나라 담양의 정자들은 고색창연한 누마루에 걸터앉아 바람소리를 벗하면 누구라도 시인이 될 수 있는 호젓함이 일품이다. 그러나 이곳은 낭만적인 이름과는 달리 주된 목적은 달구경보다는 성을 방비하기 위한 무기고였다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넓은 정원의 이름 모를 나무에서는 딱따구리가 집을 짓고 있는지 힘차고 분주하게 딱딱 거리고 있다.

2차 대전 중 폭격으로 소실된 대부분의 건축물은 60년대에 철근 콘크리트로 재건했다는 기록문을 읽어보는 자리에 축조당시 텐슈카쿠(천수각)의 초석을 옮겨 놓았다는 많은 돌들이 늘어져 있는 국가 중요문화재가 있다.

후원인 고라쿠엔까지 감상 할 수 있는 티켓을 사서 바로 5-6층에 위치한 전망대로 향했다. 고라쿠엔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의 전망은 시원했다. 금색 범고래상을 고라쿠엔과 아사히카와를 배경으로 한 장 찍고 오카야마 시내를 360도로 돌면서 내려다 봤다. 나지막한 건물들이 질서정연하게 스카이라인을 그려내고 있어 전체적으로 포근한 느낌이었다.

계단을 따라 천천히 내려오면서 오카야마성의 특징 및 에피소드를 잠깐씩 훑고 소실되기 전의 옛 모습도 사진으로 살폈다. 한 층을 내려오자 3층에는 성의 역사를 전시해 놓았는데 관심이 없다. 빠른 걸음으로 패스. 2층에는 이케다 시대의 자료 전시와 함께 공주 의상을 입어볼 수 있었고 가마에 앉아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1층은 비젠야끼 공방과 카페가 있다.

비젠야끼는 현재 비젠지역으로 대표되는 오까야마현을 중심으로 9세기경부터 제작되기 시작한 일본의 6개 전통가마 중 하나이다. 비젠은 16세기 모모야마시대에 가장 전성기를 누렸는데, 일본의 전통다례문화에 사용되는 다례용품을 주로 생산하고 생활용기를 만들었다. 그 후 에도시대에도 영주들이 비젠야끼를 선호하며 키무라, 카네시게, 모리 등 전통 비젠가문에게 특권을 부여하기도 했다. 이러던 것이 메이지시대에 들어와 비젠을 비롯한 모든 전통가마와 전통공예품의 생산이 급격히 줄면서 비젠을 만드는 도예가문이 몇 남지 않았다. 하지만 1930년대 도예가 토요 가네시게가 모모야마시대의 비젠을 부활시키며 일본에서 비젠야끼를 현대생활에 맞게 디자인하며 새롭게 탄생하는 계기를 맞았다.

비젠의 매력은 도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뿐 아니고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들 또한 매우 좋아하는

도기이다. 비젠은 오직 “흙과 불” 만으로 만들어지는 아주 단순하고 소박한 도기이다. 유약을 쓰지않기 때문에 흙의 질감을 바로 느낄 수 있어서 매우 따뜻한 느낌을 주고, 그릇에 음식을 담으면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화병에 꽃을 꼽으면 더 아름답다.

다른 전통 도기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유약을 사용하기 시작하지만, 비젠만은 유약을 사용하지 않는 유일한 도기이다. 유약을 칠하지 않은 비젠을 “생얼의 아름다움” 이라고 말하고 유약을 칠한 다른 도자기들은 “화장을 한 아름다움” 이라고 한다.

비젠야끼는 같은 도예가가 같은 조건에서 반복을 해도 똑같은 모양을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모든 작품은 세상에 유일한 모습을 가지고 만들어 진다. 강도또한 매우 좋기에 한개를 가지면 거의 평생 쓸 수 있고, 사용할수록 담는 음료의 맛이 좋아지기 때문에 “평생의 동반자” 라고 불린다. 이러한 비젠의 매력때문에 일본뿐 아니고 세계적으로 발산되어 많은 인기를 얻는 도기가 되고 있다. 비젠에는 풍부한 흙이 있는데 그 흙 자체가 아름답기 때문에 어떤 것을 만들어도 아름다운 도기가 된다. 특히 비젠야끼는 매일 사용해서 손때가 묻을수록 색상과 조직이 더 좋아진다는 것이다. [출처] 비젠야끼 – 유약없는 일본전통도자기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에서는 오카야마성에 방문한 코난이 성주의 옷을 입어보는 장면이 방영되었다. 그리고 성의 1층에서 파르페를 먹는 장면이 있다. 이때 코난이 먹었던 ‘오시로 파르페’는 현재도 오카야마성 1층 카페의 최고 인기 메뉴다. 카페 안에는 애니메이션 속 찻집 장면을 캡쳐한 사진이 걸려있었고 애니메이션 속 그 모습이었다. 휴일에는 이곳을 보기위해 많은 사람이 찾는다는데, 오늘은 사람들 출입도 거의 없고 포근하게 안정된 공기가 온화하게 흐르고 있었다. 파르페를 주문했다. 긴 잔에 불안하게 얹혀있는 포도 졸임은 달콤했다. 예사롭지 않는 졸임 맛이다. 시판되고 있는 캔 조림이라면 선물로 좋겠다는 생각에 주인에게 물었더니 고개를 흔들며 설명한다. 오카야마 특산 포도인 피노누아를 일일이 껍질을 벗기고 씨를 빼서 수작업으로 직접 만들고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포도 졸임이라고. 간단한 디저트지만 시간과 정성으로 만든 귀한 음식이었다는 생각에 비싼 값을 지불했지만 오래도록 달콤했다.

계단을 따라 걸어 내려오며 성의 지붕과 하늘이 만들어 낸 유려한 곡선의 미를 감상하면서 국화 전시회장을 찾았다. 일본 소설을 읽다보면 소설 속 인물들이 취미의 하나로 여름 나팔꽃 기르기, 가을 국화 키우기 등에 심혈을 기울이는 장면묘사를 볼 수 있다. 마침 취미로 키워내는 국화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니 일본인들의 문화를 볼 수 있는 가을 여행의 보너스다.

봄부터 꺾꽂이에서 시작하여 접을 붙이고 철사를 감고 틀과 지주에 묶어 키워낸 작품들이 늘어서 있었다. 국화종류는 식물 중에서 가장 진화한 종이고, 국화전시회에 나오는 작품은 식물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난 장인들의 예술품이었다. 취미생활에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한 창작품이 되어 전시되었다. 국화꽃을 피워 낸 취미의 달인도 만났다. 그러나 꽃들이 성형 미인들처럼 너무 완벽하고 인공적이었다. 감탄스럽기는 하지만 감동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경이로웠지만 집요한 일본인의 속살을 들여 다 보는 것 같아 조금 으스스했고 질리는 기분에 사로 잡혔다. 문득 전라북도 옥산의 저수지에 흐드러지게 멋대로 피어나서 바람 따라 흔들리는 감국과 구절초를 눈이 시리도록 바라보고 싶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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