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메지 향토 미술관

문화행사를 안내하는 포스터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새빨간 기모노 차림에 왼손에는 금빛 부채를 들고, 한 평생 춥게 살아도 지조를 팔지 않는다는 늙은 홍매의 오비를 두른 일본 미인도. 순정 만화 속 주인공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긴 목과 흰 피부가 고혹적이다. 건강함도 없고 육감적인 터치도 없이 고요하고 허무한 아름다움으로 서정을 자극하는 나른한 여인. 다케히사 유메지(だけひさ ゆめじ, 1884 ~ 1934) 미술관 안내 포스터였다.

오카야마현 오쿠군 혼죠마을의 작은 양조장에서 태어나 일본 제일의 서정화가가 되어 이곳에 향토 미술관을 설립했다. 신문 삽화등을 그리면서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미인화>를 즐겨 그리는 화가로 알려졌으나 작품 활동 폭이 넓었다. 시작(詩作)과 더불어 80여곡의 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다. 일본화는 물론, 판화, 악보, 잡지표지, 옆서, 손수건(千代紙), 유카타(浴衣) 등 다양한 디자인을 하며 대정시대의 로망과 소화시대의 모던함을 풍미하기도 했다. 현대 미인화의 제일인자로 통하기도 하는 그는, 일본 전래의 미인상에 아르누보양식을 접목해, 가는 눈과 눈썹, 지나치리만치 타원형인 고독한 일본 미인을 가장 잘 표현하는 작가로도 통한다. 숱한 염문을 뿌리며 낭만과 예술로 일세를 풍미했던 그가 그린 작품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예술적 평가가 높아지고 있다.

 

제6전시실겸 아트 카페

서정과 표류의 화가 유메지의 귀향전이 열리고 있었다. 일본화에 지식이 없는 우리는 입장료가 과하다 싶어 목도 마르고 피곤해서 아트카페로 갔다. 카페는 생전의 그가 그린 미인화들의 판화작품과 아트상품을 판매 전시하는 곳이었다. 홍차를 주문하고 찬찬히 일본 미인들을 바라본다. 막연하게 일본의 미인이라고 생각해왔던 이지미들이 어느정도 감이 잡혔다. 일본인의 심정과 감미로운 리듬에 실린 무척 순진해서 훅 불면 깨질 것 같은 연약함이라고나 할까? 우리나라 김홍도의 풍속화에 나오는 건강하고 육감적이면서도 단아함을 풍겼던 미인들과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유명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카페는 보는 순간 표현은 어렵지만 참 일본답다는 말에 어울리게 세련되면서 모던한 분위기였다. 젊은 날의 유메지의 사진 아래 앉아 마시는 얼 그레이는 깊은 향과 쓴 맛이 조금 감도는 부드러운 맛으로 아리타에서 구워진 아카에 도자기에 담겨있어 더욱 향과 맛이 업그레이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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