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라시키

오카야마역에서 jr 산요본선을 타고 구라시키역에서 내렸다. 역에서 쭉 벋은 길(주오도리)을 따라 천천히 이 간판 저 간판 읽어가면서 10여분을 걷다가 왼쪽으로 돌면 비칸 지구가 시작된다. 이곳에 들어서니 에도 시대로 시간 여행을 온 것 같다.

구라시키는 에도시대 도쿠가와 막부의 직할영지로서 물류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다. 강을 따라 쌀과 면화를 보관하기 위한 창고가 들어섰고 배들은 물길을 따라 물건을 실어 날랐다. 도시의 이름 자체가 창고를 의미하는 구라에서부터 왔으며, 운하주변을 따라 나마코 무늬의 흰벽과 검은 기와지붕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곳은 옛 모습이 잘 보존되어있는 작지만 번화한 곳인데 보아하니 많은 상가의 위층에는 그대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관광객과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일상이 영위되는 곳. 독특하고 활기가 넘친다.

물류 창고로 쓰던 옛집은 카페가 되어 사람들이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고, 레스토랑이 되어 지친 여행자를 따뜻한 밥으로 보듬어 주고 있다.

버드나무는 백번을 꺽어도 새가지를 길게 드리우며 운하에 거룻배를 띄우고 뱃놀이를 해보라고 관광객을 부른다. 무척 한가로워 보이지만 목가적인 기분을 느끼는 것은 구라시키를 홍보하는 사진 속에서의 일 일뿐, 기다리는 관광객이 너무 많다. 운하 중간에 걸려있는 나카바시도 멋지지만 혼잡하다. 혼잡을 피해 좁은 골목에 낡은 건물들이 들어 서있는 혼마치도리로 들어선다. 운하 주변에 비해 이곳은 아기자기하고 정이 간다. 나무색이 많은 데서 오는 온화한 느낌이 좋다. 진한 커피 향을 쫓아 자그마한 카페에 들러 드립커피 한잔을 청해 마시고 잠시 숨을 고른 다음 옛 방적 공장에다 현대성을 살려 복합교류시설을 만든 아이비 스퀘어로 향한다. 붉은 벽돌을 막 물들기 시작한 담쟁이덩굴이 휘감고 있어 에도시대의 공장은 가을빛에 황홀하게 몸을 떨고 있다. 이곳에는 도예체험공방, 오르골 박물관, 호텔, 레스토랑 등이 있었다.

100년이 넘는 전통가옥을 활용해 꾸민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로 유명한 유린안으로 갔다. 아이돌 그룹 신화의 멤버가 자전거 여행을 하며 들른 곳으로, 계란에 부추간장을 넣어 비벼 먹는 간장계란밥과 복숭아주스 등이 유명하다. 길게 늘어선 줄에 꽁무니를 차지하고 있다가 맛본 디저트 시아와세 푸딩은 자그마한 바구니에서 마음에 드는 미소짓는 모습을 골라먹는 것이다. 고르는 재미는 있지만 한정판매를 할 만큼의 맛은 아니었다. 복숭아 쥬스는 오카야마의 유명 유리공예가가 만든 복숭아 모양인 듯 엉덩이 모양인 듯 독특한 유리컵에 담겨나온다. 맛은 호기심을 따라가지 못했다. 먹으면 2주 뒤에 미소짓는다는 말장난이 관광객의 주머니를 열게 만든 디저트임은 인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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