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파사나 카페
위파사나
그대는 이 순간 깨어 있는가
“있는 그대로 보았는가?”
“예.”
“그럼 그때 무엇을 보았는가?”
“······.”
경기도 남양주 천마산 기슭의 봉인사. 미얀마의 대표적인 고승인 우 빤디따 사야도(선사)가 석가모니 부처의 수행법인 위파사나를 지도하고 있었다.
우 빤디따 사야도는 위파사나 수행 과정에 참가한 최요원 씨와의 개인 면담에서 좌선 때 배가 일어나고 사그라지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았느냐고 물었다.
위파사나를 접한 지 불과 3일째다. 초보자인 그에게 온종일 수행은 무리였다. 이곳에선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한 시간 동안 호흡이 드나드는 배를 관찰하는 좌선을 하고, 이어 한 시간 동안 서서히 걸으면서 발을 관찰하는 행선을 한다. 저녁시간의 설법과 식사, 수면시간을 제외하곤 좌선과 행선을 한 시간씩 번갈아가며 하루종일 되풀이한다. 한 시간 내내 눈을 감고 앉아 배만 지켜보고, 이어 몇 초면 갈 거리인 10미터를 10여 분이나 슬로비디오 화면처럼 걸으며 발을 바라보기를 한 시간 반복하는 게 처음엔 여간 힘들지 않았다. 배와 발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인가. 답답했다.
그러나 모두가 존경하는 사야도의 물음에 무언가 답을 내놓아야 했다. 대학원생인 그는 학구파답게 멋진 답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바로 그때였다.
“그렇게 생각을 한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본 그대로를 말해야 한다.”
“······.”
요원 씨는 무엇을 훔쳐 먹다 들킨 사람처럼 흠칫했다. 사야도는 얼어붙은 그의 마음을 풀어주려는 듯 자애롭게 말했다.
“한쪽 손을 바닥에 짚어보라.”
요원씨가 오른쪽 방바닥에 손을 짚자, 사야도가 어떠냐고 물었다.
“팔이 뻣뻣하고 딱딱해진 느낌입니다.”
“그렇다. 그것이 실제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무슨 고차원적인 답을 요구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으로 머리를 굴리던 요원 씨는 사야도의 말이 너무 싱겁게 느껴졌다.
“그럼 그 본 것을 보여달라.”
“보여줄 수는 없습니다.”
그랬다. 팔을 바닥에 짚었을 때 뻣뻣해지고 딱딱해지는 느낌은 실재하는 것이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는 없었다.
“몸을 관찰할 때는 그렇게 몸의 실제 모습을 관찰해야 한다. 실제를 관찰하다 보면 실제는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단순함 안에서 다르마(진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행선 때도, 좌선 때도 머릿속으로 온갖 궁리를 하거나 번뇌의 거미줄을 짜던 그는 드디어 ‘현재의 실제 상태’를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 위파사나의 핵심임을 깨달았다. 이제야말로 제대로 된 수행을 시작할 수 있으리란 자신감이 들었다.
위파사나는 이처럼 알아차림의 수행이다. 수행자의 눈에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과 생각나는 것 일체를 알아차린다. 알아차리는 순간 번뇌는 물러간다. 또 몸 안팎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정확히 관찰함으로써 모든 것은 독립된 실체가 없다는 무아(無我)와 모든 것은 변한다는 무상(無常), 집착과 번뇌를 완전히 떠나면 이르게 되는 열반(涅盤)까지, 불법의 핵심 진리인 삼법인(三法印)을 깨닫게 된다.
중생의 정화를 위한, 슬픔을 건너기 위한, 괴로움의 소멸을 위한, 진리의 길을 걷기 위한, 열반의 중득을 위한 오직 한 길이 있다. 이 길 이 몸, 마음, 법(진리)의 네 곳에 마음을 집중하는 사념처 위파사나이다. -<<대념처경>>
불교 수행을 대표하는 것은 지관(止觀)이다. 지(止) 수행은 정신통일, 즉 사마타를 말하며, 관(觀) 수행은 관찰, 즉 위파사나를 말한다.
석가모니는 당시 인도 사회에서 유행하던 사마타(정신통일) 수행의 최고 경지에 도달했지만,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다. 그는 선정 속에 서 스스로 발견한 위파사나(관찰) 수행을 통해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 즉 모든 것은 서로 연관돼 있고,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져 있다는 연기법을 깨닫게 되었다.
일체의 동작과 생각, 외부 소리 등 모든 것을 알아차리고 주시해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자아를 탐구하다 보면 모든 것은 끊임없이 일어났다가 사라질 뿐이며, 마음이란 그치지 않고 흐르는 현상, 생각, 이미지, 정서, 분위기일 따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마디로 붙잡아둘 마음이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또 육체란 여러가지 느낌과 감각들의 잡합일 뿐, 그 어느 곳에도 ‘나’ 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나라 불교에선 중국에서 건너온 화두선을 주요 수행법으로 삼고 있지만, 석가모니 초기 불교의 전통을 고수하며 스스로 ‘근본불교’라고 칭하는 남방의 미얀마, 베트남, 타이, 인도, 스리랑카 등지에선 주로 위파사나 수행을 한다.
세계적으로 최고의 위파사나 수행터로 꼽히는 곳은 미얀마이다. 미얀마의 위파사나 수행 풍토를 되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우 빤디따 사야도의 스승인 미하시 사야도다. 1982년에 세상을 떠난 마하시 사야도는 위파사나의 가르침을 기록한 <<대념처경>>에 따라 수행했고, 세계 40여 곳에 분원을 설립해 위파사나를 꽃피웠다.
우 빤디따 사야도는 20~30대 때부터 마하시 사야도의 후계자로서 수행자들을 지도할 만큼 일찍부터 수행 지도자로서 명성을 쌓았다.
미얀마가 위파사나 수행터로 각광을 받으면서, 우 빤디따 사야도가 지도하는 빤디따선원을 비롯해 찬미예선원, 마하시선원 등 10여 개의 유명선원에는 한국인 수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위파사나를 수행하는 스님들은 석가모니 부처처럼 오후엔 일체의 음식물을 먹지 않은 오후불식을 지키고 있다. 수행자들은 아예 몸에 돈을 지니지 않을 만큼 계율을 철저히 지킨다.
우 빤디따 사야도도 매일 법문 때 수행 참가자들에게 계를 주었다. 불자들도 계율을 지킬 것을 다짐하고, 수행 자세를 가다듬도록 했다. 특히 ‘알아차림’(사띠)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보통 사람들은 걸을 때 발의 움직임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 채 엉뚱한 생각을 하다가 돌부리에 체이기 일쑤고, 밥을 먹을 때도 그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다른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위파사나에선 밥을 먹을 땐 밥에 집중하고, 번뇌가 스며들 때는 다시 번뇌에 집중함으로써 번뇌를 소멸시킨다.
“대상을 정확히 조준해 놓치지 않으면 사띠(알아차림)가 생기고, 사띠가 강해지면 사마디(삼매)가 생기고, 사마디가 길어지면 욕심이나 욕망이 생길 수 없다. 번뇌가 낄 틈이 없다. 그러면 증오와 욕심과 번뇌가 사라진다. 그 청정한 마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수행하는 것이다. 청정한 마음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마음을 개발하는 것을 수행이라 한다.”
우 빤디따 사야도는 가장 기본적인 내용을 충실히 설명했다.
“번뇌가 들어오지 못하게 자신을 완전히 돌보는 길은 알아차림밖에 없다. 알아차림이 나를 안전하게 보호해줌으로써 자유로워지고 평화로워진다. 1분 동안 알아차림을 챙기면 60번의 산띠(마음과 몸의 평화)가 있다. 또 산띠가 있어야 수카(기쁨)가 있다. 감가가에는 항상 번뇌가 잠재해 있다. 감각적인 대상에서 맛보는 기쁨은 깨끗하지 못하다. 알아차림에서 오는 기쁨은 번뇌가 잠재해 있지 않은 순수한 기쁨이다. 알아차림 없이 대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마음이 밖으로 향한 것이다.”
계속 알아차림에 대한 강조였다. 사야도는 마음이 내면에 있지 못하고, 대상에 홀려 밖으로 향하는 것을 무엇보다 경계했다.
젊은 시절부터 수행자들을 지도해온 그는 ‘호랑이’로 유명하다. 미얀마에선 수행자들이 그를 만나기도 쉽지 않지만, 번뇌와 게으름을 털끝만큼도 용서치 않는 서릿발 같은 가르침 때문에 그 앞에선 게으름을 피울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주위에선 근래 들어 그의 성격도 상당히 자애로워졌다고 말한다. 세계적으로 위파사나 수행 붐이 일면서 그는 전 세계를 누비고 있다. 외국인 수행자들을 지도하기 위해 불과 4~5년 전부터 영어를 배워 지금은 영어로 설법도 하고, 면담도 한다. 여든 살 노인이 이처럼 짧은 기간에 영어를 익힐 수 있었던 것은 수행으로 그의 식(識)이 청정한 상태였기 때문일 것이다.
위파사나 수행의 강점은 개인 면담을 통한 지도에 있다. 화두선 수행을 하는 한국의 선방에서는 방장이나 조실 스님이 여름과 겨울의 100일 수행(결제)에 들어가기 전에 결제 법어를 하고, 수행을 마쳤을 때 해제 법어를 하는 것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한다. 반면에 위파사나 사야도들은 하루 이틀 간격으로 수행자와 면담을 해서 수행자가 엉뚱한 길로 빠져들지 않는지 점검한다.
수행자들은 면담 때마다 그동안의 관찰을 통해 ‘발견한 실상’을 말해야 하기 때문에 한시도 게으름을 피울 수 없다.
요원 씨도 불과 10여 분의 개인 면담 시간에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보듯 걸림돌을 간파하고 지도해주는 사야도의 가르침 덕분에 자신의 문제점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관찰은 쉽지 않았다. 배의 모습을 주시하겠다고 마음을 다잡은 지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망상은 나래를 편 채 한 편의 드라마를 그려내고 있었다. 그는 비로소 자신이 평소에 얼마나 많은 생각에 둘러싸여 사는지 깨닫고 더욱 놀랐다.
요원 씨는 이제 번뇌를 떨치려 애쓰기보다는 번뇌든, 들리는 소리든, 몸의 가려움이든 간에 모든 대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려고 노력했다. 생각 속에서 무엇을 보고 있으면 ‘봄’ 하고 알아차리고, 누구를 만나고 있으면 ‘만남’ 하고 알아차렸다. 그러다가 신기한 현상을 발견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구나’하고 알아차리는 순간 생각은 신기하게도 순식간에 사라지곤 했다. 알아차림과 번뇌는 공존할 수 없음을 알게 된 것이다. 즉 정신을 차리면 번뇌가 스며들 수 없었던 것이다.
알아차림이 좀더 수월지자 번뇌망상 속에 잠겨 있는 시간이 줄었다. 번뇌가 줄면서 마음이 고요해지자 배와 발의 단순한 움직임 속에서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현상들이 인식되었다. 숨을 들이마셨을 때 배가 당기는 느낌과 팽창감이 ‘그대로’ 관찰되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었지만, 그동안 온갖 번뇌 때문에 그 간단한 현상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소리나 생각 등의 대상을 기존의 고정관념이나 상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기 시작한 요원 씨의 통창른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1년 전 미얀마 찬미예선원에서 찬미예 사야도의 수행대회에 참가한 아래 두 번째 위파사나 수행에 참가한 비구니 현담 스님도 위파사나 체험에 놀라고 있었다. 스무 살에 출가한 그는 불법을 공부하는 강원을 마친 뒤 8년 동안 전국의 선방에서 수행하면서 별다른 진척을 ㅗ지 못한 채 가슴앓이라는 병마저 얻었다. 그는 위파사나 수행에서 자연스럽게 가슴의 통증을 관찰하게 됐다.
통증이 일어나자 곧바로 ‘통증’, ‘통증’ 하고 알아차리면서 통증을 주시했다. 그러자 한 번 일어나기 시작하면 좀체 사라지는 법이 없다고 단정한 채 고통스러워만 했던 통증의 실제 모습은 생각과는 다른 것이었다. 통증은 생각처럼 ‘연속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순간순간 일어났다 사라져가는 하나의 흐름이었다.
“작동 중인 선풍기를 단순한 원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관찰해보니 하나하나의 날개가 돌고 있는 모스이 보이는 것과 같았다.”
우 빤디따 사야도가 법문 때 “개미의 행렬을 자세히 관찰하지 않고 흘긋 보면 나뭇가지나 끈으로 착각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한 마리 한 마리가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한 말을 실감한 것이다.
삼법인 가운데 하나인 ‘무상’을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8년 동안의 참선에서도 만나보지 못한 무상의 모습을 그는 선풍기에 비유했다. 통증을 관찰하는 그의 마음에 이미 고통은 없었다. 오직 통증이 일어나는 순간의 통증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통증이 있을 땐 있다는 것을 알고, 통증이 없을 땐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 결과 환상 속에서 통증이 계속될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며 고통스러워하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몇달 전부터 본격적으로 위파사나 수행을 시작한 주부 손승효 씨는 사야도와의 면담 시간에 앞서 사야도에게 삼배를 드리는 순간에도 ‘몸을 숙이려는 마음’과 ‘숙여가는 동작’ 하나하나에 대한 관찰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몸을 반쯤 숙였을 찰나였다. 절을 하는 동작과 마음이 사실은 수백수천의 동작과 마음의 끊임없는 이어짐이라는 것을 보았다. 사야도와의 면담을 끝내고 신발 끈을 매는 순간엔 수많은 생멸의 실상이 파노라마처럼 확연히 드러났다. 한 번 잡은 것을 놓지 않으려는 집착의 끈이 ‘툭’하고 끊어지는 듯했다.
7년 째 위파사나를 수행해온 주부 장기순 씨는 이번에 알아차림이 세심해지면서 화가 일어나는 순간의 뿌리를 보았다. 그 순간 삶이 구조조정되듯 삶과 세상을 보는 눈이 완전히 바뀌어버렸다고 고백했다. 몸과 마음에 대한 집착도, 소유에 대한 집착도 이제 그의 것이 아닌 듯 했다.
우 빤디따 사야도는 수행을 머리로 이해하려는 것을 극히 경계했다. 실제를 관찰함으로써 환상과 착각과 번뇌를 없애는 것이 위파사나이다. 그러므로 생각으로 또 하나의 생각을 짓는 것을 그가 놔둘 리 없다.
그는 나와의 수행 면담 때도 자신의 경험을 얘기해주는 배려를 잊지않았다. 그 역시 마하시 사야도처럼 교학을 먼저 공부하고 수행을 접했는데, 머리로 익힌 교학때문에 수행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런데 “교학을 완전히 버리고 나니 비로소 진정한 수행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머리로 잘 이해하거나, 많은 체험을 한 것을 결코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오직 ‘철저한 관찰’만을 최고로 꼽았다. 오히려 수행자들이 그런 체험에 빠지는 것을 극히 경계했다. 신비 체험은 성실히 수행하다 보면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수행에서도 신비 체험자들이 적지 않았다. 7년째 위파사나 수행을 해온 한여성은 4~5년 전부터 몸과 마음에 대한 관찰이 세밀해지면서 몸과 마음의 분리가 자유로워지는 유체이탈을 경험한다고 했다.
그러나 우 빤디따 사야도는 한국의 수행자들이 일체를 버리고 불법을 깨달으려 하기보다는 신비체험에 현혹되어 삼천포로 빠지는 것을 경계하는 듯 했다.
세계적으로 이른바 구루 아이덴티티(스승 행세)가 가장 강한 한국의 수행자들이 신비 체험이나 어떤 초능력을 얻으면, 그 힘으로 진리를 향한 정신을 계속하려 하기보다는 사람을 현혹시키고, 자신이 부처인 양, 구세주인 양 행세하려 한다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깊은 좌선 때 나타나는 현상을 사야도에게 설명했는데, 그는 “그 순간 그 현상을 자세히 관찰했는가”라고 물었따. 할 말이 없었다. 나는 그 현상이 지극히 만족스러워 관찰하기보다는 그저 지속되길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조용히 그 자리를 나왔다.
그 밑에서 6년간 수행한 오십대의 조성숙 씨가 우 빤디따 사야도 옆에 앉아 통역을 했다. 그날 밤 조씨는 우연히 만난 내게 “당신이 나간뒤, 사야도께서 그 경계가 선정이 깊어지면서 나타나는 것임을 말해주고 싶었지만, 또 그 현상에 집착하고 잡으려 할 우려가 있어 말해줄 수 없다더라”고 전해주었다.
나 또한 위파사나를 접한 지 얼마 되지 ㅇ낳아서 좌선 때 다리의 뼈와 뼈가 부딪치는 통증 때문에 배의 일어남과 사라짐에 대해 상세히 관찰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관찰해보니 10분이나 20분마다 편한 자세로 조금씩 자세를 바꾸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하루는 목밑으로 아예 전신마비가 됐다고 작정하고 1센티미터도 움직이지 않았다. 10분~20분 주기로 자세를 조금씩 편하게 해주다가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으려니 통증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복숭아뼈와 복숭아뼈가 닿는 부분이 아파서 견디기 어려웠다. 그래도 1센티미터도 움직이 않은 채 그 통증을 주시했다. 그랬더니 정말 통증은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생겼다가 사라지고, 다시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여기저기 가려운 곳도 많았지만 전혀 움직이지 않고 버텼다. 그렇게 50분이 지나고 다시 행선 시간이 됐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버텼다. 그러기를 두 시간, 또 한 시간. 다시 우 빤디따 사야도와 면담 시간이 돌아왔다.
“그때 무엇을 보았는가?”
“몸이 긴장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몸이 긴장했는가, 마음이 긴장했는가?”
사야도의 물음이 다시 마음을 쳤다. 그랬다. 온갖 통증과 가려움을 이겨내느라 긴장했는데, 그것은 몸이 긴장하기 전에 마음이 긴장한 것이었다. 마음 따라 몸이 굳은 것이다. 그렇게 몸의 통증만 살피다가 ‘마음’ 챙김을 놓친 것이다.
우 빤디따 사야도는 수행자드로가 이틀에 한 번 면담을 했다. 면담 모습을 취해하면서 수행자가 삿된 길을 버리고 옳은 길로 가도록, 힘들이지않고 끌어올리는 것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한 수행자가 몸의 기운이 올라가면서 감기에 걸린 것처럼 온몸에 열이 난다고 보고하며, 열이 어떻게 혈을 타고 올라가는지 설명했다. 그것은 요가에서 우주와의 합일로 보기도 하는 쿤달리니 현상과 유사해 보이기도 했다. 그는 그런 현상에 들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우 빤디따 사야도가 상당한 평가를 내려줄 것으로 기대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 빤디따 사야도의 답은 전혀 뜻밖이었다.
“괜찮다. 그것은 수행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니 두려워할 것없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마치 수행자가 이 현상에 대해 두려움을 갖거나 걱정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는 달래듯 말했다. 참으로 기막힌 방편이 아닐 수 없었다. 수행자에게 면박을 주지 않으면서도, 신비체험에 대한 무상을 스스로 깨닫도록 하는 고단위 처방이었다. 돌아선 수행자가 그 현상에 들떠 있던 자신을 부끄러워했음을 두말할 것도 없었다. 이것이 선사가 수행자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사야도는 오직 “생각으로가 아니라, 실제로 무엇을 보았는지”만 물었다. 사야도는 지금도 질문을 던지고 있을 것이다.
“그대는 이 순간 깨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