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본토 최남단역이라는 곳에 가서 엽서 한 장을 보내고 올레 길을 걷는 것이 가고시마 일정의 끝이었다. 역에서 카이몬타케로 향하는 올레 길을 산책하며 해바라기 밭에서 노란 양산을 받쳐 든 화보 촬영이 정점이었다. 그런데 말짱하던 하늘이 점심 무렵부터 비를 뿌린다. 두어 시간 만에 기세 좋은 장대비로 변해 앞을 가늠하기 어렵다. 초행길에 걷지도 못할 길을 네비에 의존해 찾아가는 것은 무리다. 바람과 비가 더욱 거세진다.
와중에 비 오는 이케다 호수를 지났고, 내려서 호숫가를 걸으면서 새침하게 피어있는 들꽃과인사하고 호수에 살고 있다는 괴생물체 이시도 만나야하는데…. 언제 다시 올 수 있나?
아쉽다. 윈도우 브러시를 최대속도로 동작하면서 비속을 운전했다. 정말 태풍이 가까이 오고 있나보다. 이부스키역으로 돌아와 안전하게 차를 반납하고 역으로 갔다. 폭우로 기차가 끊겼단다. 불과 몇 시간 전에도 이렇지 않았는데 자연의 길을 인간의 짧은 혜안으로 짐작하긴 어렵구나. 난감한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외진 마을 어디든 들러 돌아 돌아가는 완행버스다. 처음엔 정겹고 신기하던 버스길이 두 시간 넘게 가다 서다를 반복하니 허리도 아프고 지겨워진다. 목적지 가고시마 중앙역에 도착했다. 몇 번 왔던 곳이라 반갑다. 장거리 여행도 끝났다. 이제 가고시마의 시로쿠마 방수를 먹으로 가보자.
시로쿠마
가고시마에 가거든 시로쿠마를 꼭 먹어줘야 여행이 마무리된다는 말에 빙수가게에 들렀다. 귀여운 곰이 그려진 간판이 먼저 눈에 띈다. 시로쿠마라니 흰곰이구나..그런데 빙수가 웬 곰? 의아해하면서 자리를 잡았다. 메뉴는 다양하다. 일반적인 빙수를 보통사이즈로 주문했다. 우유로 만든 얼음을 베이스로 연유가 살짝 뿌려졌고 얼음 위로 다양한 과일이 곰 등에 올려 진 듯 다닥다닥 붙어있다. 수박, 귤, 키위, 딸기. 복숭아등. 색색이 화려하고 산처럼 쌓인 얼음 위에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는 과일이 신기해 탄성부터 나온다.
이 빙수는 패전 후, 얼음 위에 꿀과 시럽을 뿌려 달콤하게 먹던 것으로 지금의 화려한 모습을 가진 귀여운 흰 곰이 되기까지 70여년이 흘렀단다. 빙수도 시간을 갖고 변화와 적응을 거듭하니 그 시간을 맛보려고 이렇게 사람들이 몰리나? 팥은 없다. 달콤함과 부드러움만 가득하니 쉽게 질린다. 한사람이 한 개를 먹는다는 것은 어렵겠다. 적절하게 주문을 해서 비싼 얼음을 남기지 않아 다행이라 여기고 느끼함 속의 달콤함을 핥았다. 아! 우리 빙수가 맛있어. 역시 빙수는 팥이야!!를 읊조리며 다시 노면 전차를 타고 숙소로 왔다